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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Chemistry

[8강 생명의 화학] 효소와 의약품

1. 효소(enzyme)

 효소는 수백 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로, 유기체 내에서 필요로 하는 화학 반응들을 수행한다. 효소는 분자 간의 결합을 깨트리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빵을 먹을 때에, 침에 들어있는 아밀라아제가 녹말을 당 분자로 분해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효소가 반응 속도를 증가시키는 정도는 어마어마하다. 수백만, 심지어 수십억만배로 증가시킨다. 효소가 반응하는 물질을 기질(substrate)이라 하고, 기질이 변형된 것을 효소의 생성물이라고 한다.

 대강 보면 효소가 촉매와 비슷해보일 수 있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촉매는 화학 반응을 촉진시키는 것의 총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정의에 의하면 열도 촉매에 해당할 수 있으나, 효소는 생물학적인 고분자 촉매만 일컫는다.

 물론 우리는 몸 밖에서도 여러가지 목적으로 효소를 오랫동안 사용해왔다. 빵을 굽거나 맥주를 담글 때, 와인을 숙성시키거나 요거트를 만들때 우리는 이스트(yeast)라는 생체 효소를 사용하고 있다. 치즈를 만들 때 우유를 엉기게 하는 레닛(rennet)이라는 효소도 있으며, 옷에 있는 음식물의 얼룩을 지울 때, 고기를 부드럽게 할 때에도 효소가 사용된다.

 

 효소의 작동원리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독일 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헤르멘 에밀 피셔이다. 그는 '자물쇠-열쇠' 모형을 제시했는데, 이는 효소가 그 표면에 자신의 기질과 정확하게 들어맞는 구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열쇠가 자물쇠에 꼭 맞게 들어가듯, 거질은 효소에 잘 맞아 들어가고 그 결과 반응이 일어나고, 반응 결과 생긴 생성물은 효소로부터 다시 떨어져나간다. 

 '자물쇠-열쇠' 모형은 오랫동안 받아들여졌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유도-적합' 모형이 새롭게 제시되었다. 이 모형은 효소가 특정한 모양을 가진 것이 아니라, 훨씬 유연하다는 이론이다. 적절한 기질이 효소에 접근하면, 효소는 부드럽게 기질을 둘러싸기 위해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메커니즘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효소가 특정한 기질하고만 반응한다는 점이다. 분명 효소는 자신에게 맞는 기질을 찾고, 그 상대와 만나기 전까지는 반응을 시작하지 않는다. 이를 '기질 특이성'이라 할 수 있는데, 물질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는 두 반응물을 분리하여 의도하지 않는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체 내에서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는데, 이미 효소가 세포라는 실험관 안에 있기 때문이다. 효소는 수많은 기질들에 둘러싸여 헤엄치고 있는데, 그들 모두와 반응하는 일이 벌어지면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은 화학적으로 정확한 자극을 찾기 전에는 효소의 잠재력이 발현되지 않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설계했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것이 아주 많다 카더라.)

 

 효소는 우리 몸에서 화학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본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작용을 응용한다면 우리는 위험한 병원균을 훨씬 효율적으로 없앨 수 있다. 예를 들어, 효소들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효소의 활성자리를 막아 버리는 억제제를 약품으로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억제제는 효소가 치료과정를 방해할 때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효소(enzyme)가 기질(substrate)과 결합했을 때의 구조 변화

2. 의약품

 강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드나무는, 합성 약품의 시작과 더불어 의약품 산업의 탄생이라는, 현대 의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다. 버드나무와 약품의 역사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내과의사였던 히포스라테스가 버드나무 껍질로 만든 치료제로 통증을 완화하고 발열에 효능이 있는 것을 발견했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수메르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버드나무 치료제를 사용해왔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들은 이 방법을 이용하여 통증을 치료하였으나, 1828년에 들어서야 버드나무 안에 약효를 가진 화학물질이 불리되었고, 이는 살리신(salicin)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과학자들은 살리신의 유도체인 살리실산을 이용해 많은 실험을 하였다. 살리실산은 진통제로 사용되었으나 설사나 위출혈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부작용용을 없애려 노력하였는데, 독일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이 살리실산의 새로운 형태인 아세틸살리실산을 개발함으로서 최초의 실용적인 합성약품을 만들어낸다. 호프만의 고용주는 살리실산에 비해 진통의 효과가 좋고 부작용도 미미한 이 약품을 시판하였는데, 약의 이름은 바로 아스피린(Asprin)이다. 

 과학자들이 아스피린의 작용 메커니즘 수수께끼를 푼 것은 1971년에 들어서였다. 아스피린은 일종의 억제제인데, 뇌에 고통 반응을 보내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을 만드는 핵심 효소를 방해하는 방식이다. 아스피린이 혈액에 들어가면 사이클로옥시지나제라는 효소에 붙어 프로스타글란딘을 더 이상 생성하지 못하게 하고, 그 결과 뇌가 더 이상 고통을 느못 느끼며 붓기도 가라앉고 기분도 훨씬 나아진다.  

만병통치약이라 불렸던 아스피린.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역사적으로 과학은 자연으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구해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학적 발견은 페니실린으로, 스코틀랜드의 화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에 의해 이루어졌다. 모두가 알듯이 그는 우연히 곰팡이가 박테리아를 녹여버린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이러한 현상을 보았을 때, 생명 유기체가 질병에 대해 자기 방어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한 실마리였다. 현대 의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방식을 계승하여, 인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뛰어난 방어 물질과 효소의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